지난 19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 사막 한가운데서 전 세계 K팝 팬들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는 소식이 전해졌다. 데뷔 20주년을 맞은 빅뱅(BIGBANG)이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이하 코첼라) 무대에 올라 월드투어를 공식적으로 예고했다.
영광과 상처, 찬사부터 뼈아픈 비판까지. 지난 20년간 대한민국 대중음악사에서 빅뱅만큼 극적인 서사를 가진 그룹이 있을까 싶다. 빅뱅은 5인조로 데뷔해 K팝 판도를 바꾼 천재적인 아티스트들, 그러나 숱한 사건사고로 대중의 '애증의 아이콘'이 되기도 했다. 데뷔 20주년을 맞아 코첼라 무대에서 새로운 막을 올린 빅뱅이 지금까지 걸어온, 찬란하고도 다사다난했던 20년의 궤적을 되짚어봤다.
◆ ' 아이돌' 공식 깬 빅뱅…음원 제왕 넘어 '문화 아이콘'으로
2006년 8월19일, YG엔터테인먼트의 서바이벌 다큐멘터리 리얼다큐 빅뱅을 거쳐 지드래곤(G-Dragon), 태양, 탑(T.O.P), 대성, 승리로 구성된 5인조 빅뱅이 세상에 등장했다. 당시 가요계는 정형화된 군무와 기획사가 만들어준 콘셉트를 소화하는 아이돌이 주류였다. 하지만 빅뱅은 달랐다. 힙합을 베이스로 한 빅뱅은 직접 작사, 작곡에 참여하며 '셀프 프로듀싱 아이돌'이라는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전설의 시작은 2007년 발표한 미니 1집 타이틀곡 '거짓말'이었다. 지드래곤이 작사·작곡한 곡은 대한민국 전역을 강타하며 신드롬을 일으켰고, 연이어 발표한 '마지막 인사', '하루하루', '붉은 노을'이 연속으로 메가 히트를 기록하며 빅뱅은 단숨에 국민 그룹의 반열에 올랐다. 스트릿 패션과 하이엔드 브랜드를 믹스매치한 빅뱅의 스타일은 곧 길거리 유행이 됐고, 빅뱅은 단순한 가수를 넘어 시대의 '문화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다.
빅뱅은 2012년 미니 5집 '얼라이브'(ALIVE)와 2015년 '메이드'(MADE) 프로젝트에서 정점을 찍었다. 또한 그해 K팝 그룹 최초로 미국 빌보드 메인 앨범 차트인 '빌보드 200'에 진입하는 기염을 토했다. 특히 '메이드' 시리즈로 빅뱅은 가요계 역사상 전무후무한 기록을 남겼다. '루저', '배배', '뱅뱅뱅', '맨정신', '우리 사랑하지 말아요' 등 발매하는 모든 곡이 음원 차트 1위를 싹쓸이했다. 당시 멜론 등 주요 음원 사이트 연간 차트는 빅뱅의 곡들로 도배됐고, 엠넷 아시안 뮤직 어워즈(MAMA) 등 각종 연말 시상식에서 대상을 휩쓸며 '빅뱅의 적은 빅뱅뿐'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빅뱅이 여타 그룹과 차별화되었던 가장 큰 무기는 멤버 전원이 솔로 아티스트로서 최정상의 파급력을 지녔다는 점이다. 그룹의 리더이자 메인 프로듀서인 지드래곤은 빅뱅 외 솔로로서도 남다른 두각을 드러냈다. '하트브레이커', '원 오브 어 카인드', '삐딱하게', '무제' 등 발표하는 솔로 앨범마다 대성공을 거두며 아시아를 넘어선 글로벌 패션 아이콘이자 천재 뮤지션으로 군림했다.
K팝 최고의 R&B 보컬리스트로 평가받는 태양은 '나만 바라봐', '웨딩드레스', '눈, 코, 입' 등으로 대중성과 음악성을 동시에 잡았다. 특히 '눈, 코, 입'은 골든디스크와 MAMA에서 대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이뤘다. 독보적인 중저음 래퍼인 탑은 '턴 잇 업', '둠 다다' 등의 솔로곡을 통해 자신만의 독특하면서도 아방가르드한 예술 세계를 구축했다. 배우 최승현으로서도 청룡영화상 신인상을 수상하는 등 두각을 나타냈다.
폭발적인 가창력을 무기로 내세운 대성은 '날 봐, 귀순', '대박이야' 등 트로트 장르까지 섭렵하며 대중적인 사랑을 받았고 일본에서는 '디-라이트'(D-Lite)라는 이름으로 솔로 돔 투어를 성공시키는 막강한 티켓 파워를 보여줬다. 승리는 '스트롱 베이비' 등으로 솔로 활동을 하며 특유의 예능감으로 국내외 방송과 다방면의 사업에서 활동폭을 넓혔다.
◆ 빅뱅 덮친 시련…산산조각난 '5인' 완전체
빅뱅은 가장 높이 날아올랐던 만큼, 추락의 골도 깊었다. 빅뱅의 20년 역사는 한국 연예계에서 가장 논란이 많았던 그룹이라는 꼬리표와 궤를 같이한다. 2011년 지드래곤의 대마초 흡연 기소유예와 대성의 교통사고 연루는 그룹의 첫 번째 큰 위기였다. 그러나 가장 뼈아픈 타격은 멤버들의 군 복무 시기에 연이어 터져 나왔다.
2017년 탑이 군 복무 중 과거 대마초 흡연 혐의로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을 선고받으며 대중의 거센 비판을 받았고, 이후 그룹 탈퇴를 암시하는 행보를 보였다. 대성 역시 본인 소유의 건물에서 불법 유흥업소가 운영되었다는 논란에 휩싸였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논란은 일단락되는 듯 보였다.
그룹의 결정적 흠집이라 평가받는 사건은 2019년 이른바 '버닝썬 게이트'였다. 승리가 사내이사로 있던 클럽 버닝썬을 둘러싼 마약, 성범죄, 경찰 유착 등의 초대형 스캔들은 대한민국 사회 전체를 뒤흔들었다. 사건으로 승리는 징역 1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연예계에서 영구 불명예 퇴출당했으며 빅뱅은 '범죄돌'이라는 치욕적인 오명을 쓰게 됐다.
최근에는 지드래곤이 마약 투약 혐의로 경찰 포토라인에 서는 일까지 발생했다. 자진 출석과 강력한 혐의 부인 끝에 최종 무혐의 처분을 받으며 명예를 회복했지만, 일련의 사건들은 팬들에게 깊은 상처를, 대중에게는 피로감을 안겼다. 그렇게 '5인조' 빅뱅은 산산조각났다.
2022년 4월, 빅뱅은 승리가 빠진 4인 체제로 신곡 '봄여름가을겨울 (Still Life)'을 발표했으나 탑이 공식적으로 팀 탈퇴를 선언하며 빅뱅은 지드래곤, 태양, 대성의 3인 체제가 됐다.
◆ 다섯에서 셋, 그럼에도 '빅뱅'
그리고 2026년 현재, K팝이 글로벌 주류가 된 지금, 빅뱅이 데뷔 20주년을 맞아 코첼라 무대에 섰다. 남은 멤버들은 각자의 솔로 활동을 성공적으로 전개하며 내공을 다져왔고, 다시 '빅뱅'이라는 이름 아래 뭉쳤다. 과거의 치기 어린 소년들은 온갖 풍파를 겪으며 상처 입은 베테랑이 됐다. 따로, 또 같이 함께했던 멤버들은 무대 위에서 여전한 아우라와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왜 이들이 여전히 K팝의 아이콘으로 불리는지 여실히 증명했다.
20주년을 맞이해 예고된 빅뱅의 월드투어는 단순 향수팔이가 아니다. 영광과 상처를 모두 끌어안고, 순수한 음악 본연의 힘으로 다시 한번 대중 앞에 서겠다는, 성숙한 아티스트들의 처절한 증명이다. 코첼라에서 다시 울려 퍼진 멜로디 위로, K팝 제왕의 두 번째 챕터가 이제 막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