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상호 감독의 좀비 영화 군체가 개봉과 동시에 한국 박스오피스 1위에 올랐다. 22일 영화관입장권 통합전산망 기준으로 개봉 첫날 군체는 19만9768명을 동원하며 올해 개봉작 중 최고의 오프닝 스코어를 기록했다. 군체는 서울 도심의 초고층 빌딩에서 정체불명의 집단 감염 사태가 벌어지고, 고립된 생존자들이 진화하는 감염자들과 맞서는 이야기를 그렸다. 작품에는 전지현, 구교환, 지창욱, 신현빈, 김신록, 고수 등이 출연한다.
연상호표 좀비 영화는 단순 좀비물이 아니었다. 지난 2016년 개봉했던 영화 부산행은 한국형 재난 블록버스터의 문법 안에 KTX라는 폐쇄된 이동 공간을 집어넣어 속도감과 군상극을 동시에 살렸다. 작품은 '누가 살아남느냐'보다 '재난 앞에서 인간이 얼마나 이기적이거나 헌신적일 수 있는가'를 더 집요하게 물었다. 바이러스보다 더 무서운 것이 타인을 밀어내는 '인간의 공포'라는 점에서, 부산행은 좀비영화이면서도 사회 스릴러에 가까웠다.
2020년 등장한 반도는 부산행 이후 4년 뒤, 폐허가 된 한반도를 배경으로 세계를 넓혔다. 좁은 열차에서 벌어지는 압축된 공포 대신 무너진 도시와 카체이싱, 생존게임의 감각을 전면에 내세우며 좀비 아포칼립스 액션으로 방향을 틀었다. 부산행이 밀폐된 공간의 공포와 인간 군상을 다뤘다면, 반도는 멸망 이후의 땅에서 좀비보다 더 잔혹한 인간 사회를 보여주는 데 힘을 실었다.
이후 공개된 군체에서는 또 한 번 결이 바뀐다. 연상호는 군체에 대해 "처음부터 좀비영화를 만들려 했다기보다 초고속 정보 교류와 집단적 사고, 그 속에서 무력해지는 개별성을 이야기하고 싶었다"라고 설명했다. 그런 만큼 이번 작품 속 감염자는 단순히 뛰고 물어뜯는 존재가 아니라, 무리를 짓고 식별하며 진화하는 집단으로 설계됐다. 연상호조차도 "반도가 빠른 액션과 카체이싱에 가까웠다면, 군체는 좀비 자체에 집중한 서스펜스 스릴러"라고 강조했다.
연상호표 좀비 영화는 부산행의 열차, 반도의 폐허, 군체의 봉쇄된 빌딩 등 공간만 달라졌을 뿐, 늘 동시대 한국 사회의 불안과 인간 본성을 겨눠왔다. 군체는 또 편의 좀비 영화를 넘어 집단과 진화, 고립과 공포를 어떤 방식으로 뒤틀어 보여줄지에 대한 기대감을 일으킨다. 부산행이 대중성과 비판성을 동시에 잡았고, 반도가 세계관의 확장을 택했다면, 군체는 그 둘 사이에서 연상호 좀비 영화의 다음 챕터를 열 작품으로 읽힌다.
지난 21일 개봉한 군체의 흥행 출발선이 상당하다. 남은 건, 관객이 이 새로운 감염의 문법에 어디까지 빨려 들어가느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