JTBC 드라마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방영 중반부를 넘어선 가운데, 극 중 연출을 두고 거센 후폭풍이 일고 있다. 논란의 진원지는 지난 16일 방송된 9회에 등장한, 이른바 '카디건 포옹' 장면이다.
해당 회차에서는 20년째 데뷔하지 못한 만년 영화감독 준비생 황동만(구교환 분)이 영화진흥협회 지원 계약서에 사인한 뒤, 기획PD 변은아(고윤정 분)에게 위로를 받는 모습이 그려졌다. 이 과정에서 변은아는 자신의 입고 있던 옷 안으로 황동만을 품어 안는 연출이 전파를 탔다.
방송 직후 온라인 커뮤니티와 각종 SNS에서는 해당 연출이 단숨에 화두에 올랐다. 일부 시청자는 "결핍 끝에 이루어진 따뜻한 연대와 위로"라고 호평했으나, 반대편에서는 다 큰 성인 남녀의 로맨스라기엔 지나치게 유아기적이고 기괴하다", "여자의 신체를 모성애적 도구로만 소비해 모욕적이다" 등 강도 높은 비판을 쏟아냈다. 상처 입은 남자을 구원하는 방식이 성인 여자의 옷 속으로 파고드는 퇴행적 형태로 재현되었다는 점에서, 드라마가 품은 철학적 메시지와 별개로 연출적 무리수라는 지적이 지배적이다.
이번 카디건 포옹 논란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박해영 작가 특유의 문체와 인물 설정 방식을 짚어볼 필요가 있다. 박해영 작가는 대중 매체가 관습적으로 제공하는 매끈한 판타지를 거부한다. 대신 자본주의 사회에서 철저히 소외되고, 일상에 지쳐 마모됐으며 스스로를 '쓰레기통에 처박은 듯한' 무가치함 속에서 허우적대는 인물들을 전면에 내세운다.
작품 속 황동만도 마찬가지다. 20년째 데뷔작을 꿈꾸며 뜻대로 풀리지 않는 인생에서 시기와 질투로 미쳐버린, 타인에게 비호감으로 보일 수 있는 '모두까기'의 제왕이다. 박해영의 작품 속 인물들은 서로의 가장 추악하고 나약한 바닥을 목격한 뒤에야 비로소 연대한다. 이들의 관계는 달콤한 로맨스가 아니라 '인간에 대한 구원'의 성격을 띤다.
작가가 인물들의 결핍과 비참한 현실, 그리고 극적인 구원을 묘사하는 과정에서 가난이나 도덕적 결함, 비상식적 행동 등 시청자가 불편함을 느낄 정도의 날 것을 화면에 던져 넣는다는 점이 늘 갈등의 불씨가 된다. 카디건 포옹 장면 역시 황동만의 철저한 무너짐과 변은아의 조건 없는 수용을 시각적으로 극대화하려는 의도였겠으나, 대중의 보편적 젠더 감수성 및 재현의 윤리적 선을 넘었다는 비평에 직면하게 된 것이다.
박해영 작가의 작품이 방영 도중 재현 방식의 문제로 도마 위에 오른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2018년 방영된 tvN 나의 아저씨다. 작품은 방영 초기 20대 여자 이지안(이지은 분)과 40대 남자 박동훈(이선균 분)의 구도 탓에 권력형 로맨스를 미화한다는 의혹을 받았다. 무엇보다 1회에서 사채업자 이광일(장기용 분)이 이지안을 무자비하게 폭행하는 장면이 여과 없이 방송되며 거센 역풍을 맞았다. 방송 직후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 민원이 폭주했으며 "데이트 폭력이나 여자에 대한 폭력을 안방극장에서 자극적으로 전시했다"라는 혹평이 쏟아졌다.
다만 드라마는 회차를 거듭하며 두 인간의 숭고한 연대를 그려낸 인생 드라마로 평가받았고, 백상예술대상 TV부문 드라마 작품상을 수상하는 등 거대한 반전을 이뤄냈다. 인물에 대한 작가의 깊은 연민이 시청자를 설득해 낸 것이다. 그러나 극 초반 약자의 고통을 시각적으로 강조하기 위해 선택했던 극단적이고 폭력적인 연출 방식은 끝내 매체 비평의 한계점으로 남았다.
2022년 방송된 JTBC 나의 해방일지 역시 시청자에게 묵직한 도덕적 딜레마를 안긴 작품이다. 경기도 외곽에서 서울로 출퇴근하는 삼 남매의 서사는 현대인의 번아웃을 완벽하게 짚어냈다는 찬사를 받았지만, 남자 주인공 구씨(손석구 분)의 정체가 드러나며 거센 비판에 직면했다. 시골에서 묵묵히 일하며 염미정(김지원 분)과 서로를 '추앙'하던 구씨의 진짜 직업이 강남 호스트바를 관리하는 조폭 출신 마담이라는 사실은 시청자에게 배신감을 안겼다. 구씨의 정체가 공개된 이후 온라인상에서는 "불법 유흥업소 포주를 로맨틱한 남자 주인공으로 설정해 범죄자를 미화했다"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작가는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조차 누군가를 조건 없이 응원함으로써 구원받을 수 있다는 명제를 증명하려 했다. 하지만 그 밑바닥의 설정이 현실의 불법 유흥 산업과 직결된 범죄자였다는 점에서 대중은 이를 단순한 문학적 비유로 수용하지 못했다. 현실의 끔찍한 단면을 로맨스와 서사의 필터로 낭만화했다는 뼈아픈 지적이 남은 사례다.
박해영 작가의 드라마 속 논란은 하나의 궤를 같이한다. 인물의 극단적 무가치함과 극적인 구원을 시각화하기 위해 때로는 시청자의 윤리적 감각이나 보편적 상식과 충돌하는 무리수를 둔다는 점이다. 카디건 포옹 장면은 상처받은 예술가를 구원하기 위해 여자 캐릭터를 모성애적 도구이자 안식처로 대상화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대중은 나의 아저씨가 초기 논란을 딛고 명작으로 남았던 전례를 알고 있지만, 동시에 나의 해방일지가 보인 서사적 미화의 한계도 기억하고 있다.
지금 시대의 시청자는 작품의 철학적 깊이나 문학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해서, 그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동원된 시대착오적 연출이나 젠더의 도구화를 무비판적으로 수용하지 않는다. 오는 24일 종영하는 모두가 자신의 무가치함과 싸우고 있다가 이 기괴하고도 당혹스러운 연출의 한계를 딛고 시청자들을 끝내 설득할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